<칼럼❹> 군수의 협상력과 민생지원금 30만 원
군수는 설득하고, 의회는 판단해야 한다
엄두호 논설위원 | 입력 : 2026/10/09 [08:09]
Ⅰ. 협상은 준비된 질문에서 시작된다
민생지원금 30만 원 논의가 한 차례 멈췄다. 의회의 예산 삭감이 그것이다. 이제 군수와 의회가 서로의 주장을 반복하기보다 지난 심의에서 무엇이 쟁점이었는지를 정확히 확인할 필요가 있다.
군수가 다시 추진한다면,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정책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의원들의 질문'을 정리하는 것이다.
① 재정 부담을 우려했는가. ② 사업 효과에 의문을 제기했는가. ③ 다른 사업과의 우선순위를 문제 삼았는가. ④ 지급 방식에 다른 의견이 있었는가.
그 질문마다 답을 준비해야 한다.
① 필요한 자료를 보완하고, ② 재정 여건을 설명하고, ③ 정책 효과를 객관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군수의 역할은 여기서 명확하다. 정책을 추진할 책임이 있는 만큼, 의회가 판단할 수 있도록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설득(說得)해야 한다. "필요한 정책이니 통과시켜 달라"는 요구만으로는 부족하다.
'설득할 책임'까지 '군수의 몫'이다.
Ⅱ. 군수는 '원안'을 지키는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
정책을 추진한다고 해서 처음 만든 안(案)을 끝까지 고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30만 원이 필요한 이유는 설명(說明)하되, 금액이나 지급 시기·방식에 합리적인 문제가 있다면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 재정 상황에 맞춰 규모를 조정하거나 다른 민생정책과 연계하는 방법도 검토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원안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정책의 목적(目的)을 지키는 것이다.
군수가 "이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면, 왜 최선인지 설명해야 한다. 더 나은 방법이 제시된다면,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추진력과 협상력을 구별하는 지점이다.
추진력은 정책을 시작하게 하지만, 협상력(協商力)은 정책을 현실에 맞게 다듬는다.
군수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정책을 관철하는 능력만이 아니다. 다른 의견을 받아들여 더 나은 정책으로 만들어내는 능력도 필요하다.
Ⅲ. 의회의 역할은 '예산 삭감'에서 끝나지 않는다
군의회의 역할도 명확하다.
의회는 군수가 제출한 예산과 정책을 꼼꼼하게 심의해야 한다. 재정 부담은 감당할 수 있는지, 정책 효과는 충분한지, 다른 사업보다 우선할 필요가 있는지를 따져야 한다.
그 과정에서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면, 삭감하거나 부결할 수 있다. 그것은 의회가 가진 정당한 권한이다.
그러나
의회의 책임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①왜 받아들이기 어려운지 구체적으로 설명(說明)해야 한다. ②재정이 문제라면 어느 수준이 가능한지, ③방식이 문제라면 어떤 대안이 가능한지, ④자료가 부족하다면 무엇을 요구하는지 밝혀야 한다.
의회가 단순히 "안 된다"고 말하는 데 머문다면 군수는 다음 정책을 만들 기준을 얻기 어렵다.
견제는 필요하지만, 견제만으로 지방자치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의회의 역할은 군수의 정책을 대신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군수가 더 나은 정책을 만들도록 질문하고 검증하는 데 있다. 그리고 보완된 안(案)이 제출되면, 다시 판단하는 것이 의회의 책임이다.
Ⅳ. 군수와 의회는 서로 다른 책임을 져야 한다
군수와 의회가 같은 역할을 할 필요는 없다.
군수는 정책을 만들고, 실행할 책임이 있다. 의회는 그 정책을 심의하고, 예산을 결정할 책임이 있다.
군수는 의회의 질문을 통과해야 할 장애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의회는 군수의 재추진을 고집이나 정치적 압박으로만 받아들일 필요도 없다.
두 기관의 역할이 다르기 때문에 의견이 다를 수 있다. 오히려 의견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의 판단을 검증할 수 있다.
군수는 "왜 필요한가"를 설명하고, 의회는 "정말 필요한가"를 따져야 한다.
군수는 "어떻게 실행할 것인가"를 제시하고, 의회는 "그 방법이 타당한가"를 판단해야 한다.
군수는 '수정할 책임'이 있고, 의회는 '검증할 책임'이 있다.
이렇게 역할이 명확해지면 갈등도 생산적인 논의로 바뀔 수 있다.
Ⅴ. 이제 필요한 것은 '누가 옳으냐'가 아니다
민생지원금 30만 원을 둘러싼 논의에서 군수와 의회가 반드시 같은 생각을 가질 필요는 없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판단을 가진 상태에서도 군민에게 필요한 결론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군수는 더 정확한 자료와 설득력 있는 안(案)을 제시해야 한다. 의회는 그 안을 감정이나 진영이 아니라, 내용(內容)과 근거(根據)로 판단해야 한다.
그렇게 서로의 역할을 다한다면, 이번 논의는 단순한 예산 갈등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
군수에게 필요한 것은 강한 주장보다, 설득할 수 있는 정책이다.
의회에 필요한 것은 강한 반대보다, 납득할 수 있는 판단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군민이 판단할 수 있도록 충분한 정보가 공개돼야 한다.
지방자치의 힘은 한쪽이 다른 한쪽을 이기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서로 다른 권한이 제 역할을 다하면서 더 나은 결론을 만들어낼 때 비로소 생긴다. 이번 민생지원금 논의도 그렇게 풀어가기를 바란다.
군수는 설득하고, 의회는 검증하고, 군민은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
그것이 지금 울진에 필요한 협상력(協商力)이다.
- 어느 바닷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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