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두호 칼럼> 군수, 정치력이 필요하다

대화로 군의원을 설득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엄두호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26/09/26 [09:08]

<엄두호 칼럼> 군수, 정치력이 필요하다

대화로 군의원을 설득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엄두호 논설위원 | 입력 : 2026/09/26 [09:08]

Ⅰ. 지자체장에게 필요한 것

 

지난 8월 18일.

경북 울진군이 민생안정지원금 지급을 추진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전 군민을 대상으로 1인당 30만 원을 지급하는 방안이었다. 총사업비 약 140억 원으로, 추석 전 지급을 목표로 한다는 내용도 함께 전해졌다.

 

군민은 기대했다. 

추석을 앞두고 가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군수가 추진하는 정책으로 알려진 만큼 실제 지급을 기다린 군민도 있었을 것이다. 정책의 '발표'는 이처럼 군민에게 '기대(期待)'를 만든다.

 

그러나,

정책은 발표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예산이 필요하고, 군의회의 심의와 의결도 필요하다.

 

9월 8일.

울진군의회는 민생안정지원금 관련 예산을 삭감했다.

 

9월 25일.

추석이었다.

 

9월 26일, 오늘. 

추석이 지났다. 

당초 추석 전 지급을 목표로 했던 민생안정지원금은 지급되지 않았다. 군민이 기대했던 30만 원이 실제 지원으로 이어지지 못한 것이다.

 

이 일은 '정책의 발표'가 갖는 무게를 생각하게 한다. 정책을 발표하는 순간 '군민의 기대'가 생긴다. 따라서 정책을 발표하는 일에는 그에 따른 '책임'도 따른다.

 

지난 6월 3일.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있었다. 민선 9기 지방자치단체장이 선출됐다. 지자체장은 군정의 방향을 제시하고 정책을 구상하며 예산안을 마련할 수 있다. 새롭게 출범한 지방정부에는 새로운 정책을 추진하려는 의욕(意欲)도 클 것이다.

 

그러나,

정책을 실제 사업으로 완성하려면 의욕과 실행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정책이 왜 필요한지 설명해야 한다. 필요한 재원은 무엇인지 제시해야 한다. 의원들의 질문과 우려에도 답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정책을 보완하고 조정해야 한다.

 

지자체장에게는 정책을 추진하는 힘과 함께 군의회를 설득하는 ▲정치력(政治力)이 필요하다. 정책은 혼자 완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Ⅱ. 정치력은 힘이 아니라 '설득(說得)의 과정'이다

 

이번 울진군의 일을 군수와 군의회의 승패로 볼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누가 이겼느냐가 아니다. 하나의 정책이 제안되고 예산이 편성되며 군의회의 심의와 의결을 거쳐 사업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살펴보는 일이다.

 

군수에게는 군정의 방향을 제시하고 정책을 추진할 권한이 있다. 군의회에는 군민을 대표해 예산을 심의하고 의결할 권한이 있다. 군수가 정책을 제안하면 군의회는 그 필요성과 타당성, 재정 여건 등을 살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의견이 다를 수 있다. 군수의 정책에 군의회가 질문할 수도 있다. 군의회가 보완을 요구하거나 예산을 조정할 수도 있다. 이것은 지방자치가 작동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군수에게 필요한 정치력은 군의회를 압박해 자신의 뜻을 관철하는 힘이 아니다. 자신의 정책을 군의원이 판단할 수 있도록 충분히 설명하고, 다른 의견을 듣고, 필요한 경우 정책을 보완하는 능력이다.

 

그렇다면 ▲군수에게 필요한 '정치력'은 무엇인가.

 

① 군의회를 이기는 힘이 아니다.

② 자신의 정책이 왜 필요한지를 설명하는 힘이다.

③ 의원들의 질문을 듣고 그 취지를 이해하는 힘이다.

④ 정책에 담긴 우려와 문제 제기에 답하는 힘이다.

⑤ 서로 다른 의견 속에서 공통의 지점을 찾아내는 힘이다.

⑥ 필요하다면 자신의 정책을 보완하고 조정하는 힘이다.

 

예산이 수반되는 정책이라면 설명은 더욱 구체적이어야 한다. 군민의 세금과 재원이 투입되기 때문이다. 정책의 취지만 강조해서는 충분하지 않다. 정책을 판단할 수 있는 근거와 자료가 필요하다.

 

⑦ 필요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설명하는 힘이다.

⑧ 정책을 통해 어떤 효과를 기대하는지 설명하는 힘이다.

⑨ 기존 사업과 무엇이 다르고 왜 필요한지 설명하는 힘이다.

⑩ 재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하는 힘이다.

 

이러한 설명이 충분해야 군의원들도 자신의 권한에 따라 판단할 수 있다. 군수에게 필요한 정치력은 의원들의 판단을 자신의 뜻에 맞추는 기술이 아니다. 서로 다른 판단의 근거를 확인하고 그 차이를 좁혀가는 과정이다.

 

결국 ▲정치력은 자신의 뜻을 관철하는 힘이 아니다. 설명하고, 듣고, 답하고, 조정하면서 정책의 접점을 찾아가는 과정(過程)이다.

 

Ⅲ. 앞으로의 군정에는 더 많은 설득이 필요하다

 

군수의 과제는 많다. 필자가 살고 있는 울진군을 보자. 지난 6·3 지방선거에서 현직 군수가 군민에게 제시한 핵심 공약만 해도 10개에 이른다.

 

① 에너지연금 연 120만 원 지급

② 고준위방폐장 유치(군민 의견 수렴 후)

③ 시설관리공단 설립

④ 에너지개발공사 설립

⑤ 기회발전특구 지정

⑥ 데이터센터 유치

⑦ 울진 36번 국도 확장

⑧ 청송IC~후포 간 고속도로 연결

⑨ 울진읍 주차난 해소 및 상권 활성화

⑩ 스카이워크로 걸어서 가는 울릉도·독도 조성

 

이들 공약은 성격이 서로 다르다. 필요한 예산도 다르고 행정절차도 다르다. 군민의 의견을 먼저 들어야 하는 사업도 있다. 중앙정부나 관계기관과 협의해야 하는 사업도 있다. 예산이 필요한 사업은 군의회의 심의와 의결도 거쳐야 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공약의 숫자나 발표 자체가 아니다. 각 정책을 어떤 근거와 계획으로 추진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필요한 재원과 절차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도 중요하다. 중앙정부와 관계기관, 군의회, 군민에게 어떻게 설명하고 협력을 이끌어낼 것인지도 중요하다.

 

현재 울진군의회는 8명의 의원으로 구성돼 있다. 국민의힘 소속 5명, 무소속 3명이다. 군수는 무소속이다. 그러나 군정 운영에서 중요한 것은 정당별 의석수를 계산하는 일이 아니다. 서로 다른 생각과 관점을 가진 군의원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협력을 이끌어낼 것인가가 중요하다.

 

군수와 군의원의 생각이 항상 같을 수는 없다. 의견이 다를 수도 있다. 정책에 대한 판단도 다를 수 있다. 그것은 지방자치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중요한 것은 의견 차이를 없애는 것이 아니다. 그 차이를 어떻게 좁혀가느냐이다.

 

정책을 설명하고, 군의원의 질문을 듣고, 우려에 답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정책도 보완해야 한다. 결국 ▲군수에게 필요한 정치력은 군의원들의 생각을 자신의 뜻에 맞추는 힘이 아니라, 서로 다른 생각 속에서 공통의 해법을 찾아가는 힘이다.

 

앞으로 10대 핵심 공약을 이행하는 과정에서도 의견 차이는 생길 수 있다. 새로운 정책을 추진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때마다 필요한 것은 더 큰 목소리가 아니다. 충분한 설명과 대화다.

 

그래서 군수에게 필요한 것은 의욕(意欲)만이 아니다. 정치력이 필요하다. ▲한 번 설명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필요하면 두 번, 세 번, 네 번 다시 만나 설명하고 설득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물론 한 번의 대화로 충분히 설명하고 이해시켜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정책의 규모가 클수록 설명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추진할 정책이 많을수록 군의회와의 소통도 촘촘해야 한다. 정책의 속도만큼 정책을 이해시키는 과정도 중요하다.

 

Ⅳ. 정치력은 군민을 위한 책임이다

 

군수가 정치력을 가져야 한다는 말은 정치 조직이나 정치적 영향력을 키우라는 뜻이 아니다. 군민에게 약속한 정책을 실제 성과로 구현할 수 있는 ▲절차적 능력(節次的 能力)을 갖추라는 뜻이다.

 

정책은 발표로 끝나지 않는다.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고 군의회의 심의를 거쳐 실제 사업으로 완성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군수에게는 설명하고 설득하며 조정하는 책임이 따른다.

 

군의회가 정책에 대해 질문하고 따지는 것은 의회의 권한이다. 예산을 꼼꼼하게 살피는 것도 의회의 책임이다. 이번 민생안정지원금 예산을 둘러싼 논란 역시 이러한 지방자치의 권한과 책임이라는 틀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군의회는 사업의 필요성과 시급성, 재정 여건, 사업 효과 등을 검토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관련 예산을 삭감했다. 그 결과 군수가 발표했던 민생안정지원금은 추석 전에 지급되지 않았다.

 

여기서 어느 한쪽의 승패를 말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정책이 발표된 뒤 군의회에서 충분히 심의될 수 있도록 필요한 근거와 자료가 제시됐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서로의 권한이 충실하게 작동했는지를 살펴보는 일이다.

 

군수에게 이번 일은 중요한 성찰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정책을 발표하고 취지를 설명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의원들이 판단하는 데 필요한 자료와 근거를 충분히 제시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정책의 필요성만큼이나 정책을 뒷받침하는 근거(根據)와 절차(節次)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앞으로 추진해야 할 10대 핵심 공약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매월 전 군민 에너지연금 10만 원 지급부터 시설관리공단, 에너지개발공사, 기회발전특구, 데이터센터, 울진읍 주차난 해소 및 상권 활성화, 교통망 확충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은 예산과 행정력이 필요한 과제가 포함돼 있다.

 

좋은 취지와 강한 의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구체적인 계획과 재원을 제시해야 한다. 기대효과도 설명해야 한다. 예상되는 문제도 함께 살펴야 한다. 의원들의 질문에 답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계획을 보완해야 한다.

 

그래야 공약이 선거 당시의 약속에 머물지 않고 실제 정책과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

 

군수에게 필요한 것은 의욕과 정치력의 균형이다. 의욕만으로는 정책을 완성하기 어렵다. 반대로 조정만 하다 보면 실행이 늦어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추진해야 할 때 추진하고, 설명해야 할 때 충분히 설명하며, 조정해야 할 때 조정할 줄 아는 능력이다.

 

군민이 원하는 것은 군민에게 필요하다는 이유만으로 시행되는 행정이 아니다. 군민에게 이익이 된다는 이유만으로 밀어붙이는 행정도 아니다. 합리적인 절차(節次)를 거쳐 제대로 실행되는 행정이다.

 

군수와 군의회가 서로의 권한을 존중하면서도 필요한 지점에서는 치열하게 묻고, 충분히 설명하고, 끝까지 대화하는 지방자치가 필요하다.

 

그 길을 만드는 데 군수의 '정치력'과 군의회의 '문제의식(問題意識)'이 함께 필요하다.

 

군수의 정치력은 정치적 계산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의견을 조정하고, 필요한 협력을 이끌어내며, 정책을 실제 성과로 연결하는 데서 드러난다.

 

군수의 앞으로의 과제는 많다. 공약을 현실로 만들어야 하고 새로운 정책도 추진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더 강한 목소리나 밀어붙이기가 아니다. 더 넓고 깊은 대화다.

 

군의회를 설득할 수 있는 힘.

다른 의견을 들을 수 있는 힘.

그리고

필요할 때 한 걸음 멈춰 조정할 수 있는 힘.

 

그것이

군수에게 필요한 '정치력'이다.

 

   - 어느 바닷가에서 -

▲ 엄두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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