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울진의 호남인 사랑, 호남인의 울진 사랑

- 사람은 어디에서 고향을 만나는가 -

엄두호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26/09/21 [13:15]

<수필> 울진의 호남인 사랑, 호남인의 울진 사랑

- 사람은 어디에서 고향을 만나는가 -
엄두호 논설위원 | 입력 : 2026/09/21 [13:15]

사람에게는 저마다 마음속에 한두 곳의 지명이 있다. 누군가 그 이름을 불러주면 오래된 풍경 하나가 되살아난다. 담장 너머 감나무가 떠오르고, 저녁밥 짓던 연기 냄새가 난다. 오래전 헤어진 사람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나에게는 전라도가 그렇다.

 

나는 전라도 내륙의 두메산골에서 태어났다. 산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었다. 바다는 멀었다. 어린 시절에는 바다가 어떤 모습인지도 잘 몰랐다. 내가 알던 세상은 산과 들, 좁은 산길과 학교 운동장의 느티나무였다.

 

그런 내가 지금은 동해 바닷가 울진에서 산다.

 

▲  <사진 설명> 필자의 고향, 전북 임실군 강진면.  사진 가운데 붉은 지붕이 필자의 고향집. ‘강진(江津)’이라는 지명에는 섬진강의 나루터가 있던 곳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섬진강 오른편으로는 소설 《남부군》의 배경이 된 회문산이 자리하고 있다. ©

 

전라도와 울진.

지도를 펼쳐 놓으면 꽤 먼 곳이다. 하나는 서남쪽이고, 하나는 동쪽이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지도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마음은 닿는다.

  

오늘 재울(在蔚)호남향우회에 다녀왔다. 두 번째 만남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많았다. 조금은 어색할 수도 있는 자리였다. 그런데 자기소개를 하던 중 한 사람이 내 나이를 듣더니 웃으며 말했다.

 

"으메, 나보다 형님이고만이라우. 인자 형님이라고 불러야 허것소. 형님!"

 

그 한마디에 낯선 자리가 갑자기 가까워졌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이름도 모르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형님'이라는 말 하나에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느껴졌다. 고향의 말투가 그랬다. 그 말 속에 담긴 정(情)이 그랬다. 사람 사이의 거리는 꼭 몇 킬로미터로 정해지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 <사진 설명> 필자의 고향 강진의 5일장터   ©

 

재울호남향우회는 한 달에 한 번 만난다. 울진 남쪽 후포에서 만나기도 하고, 북쪽 부구에서 만나기도 한다. 두 곳은 자동차로 50km가량 떨어져 있다. 생각해 보면 형제도 한 달에 한 번 만나기 쉽지 않은 세상이다. 그런데 고향이 같다는 이유 하나로 먼 길을 오가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밥 한 끼를 나눈다.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 가운데는 울진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이들도 많았다. 어떤 분은 젊은 시절 군 복무를 위해 울진에 왔다고 했다. 군 복무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울진으로 왔다. 살아보니 울진이 좋았다고 했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며 칠십이 넘은 지금까지 울진에서 살고 있다.

 

향우회에서 최고령 맏형님으로 모시는 분도 계셨다. 얼마 전 서울로 거처를 옮기셨다고 한다. 그런데도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향우회에는 빠지지 않고 서울에서 울진까지 내려오신다고 했다. 어느 아우는 영덕에 살면서도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울진까지 찾아왔다고 한다.

 

사람이 떠난 곳에서도 마음은 떠나지 않을 수 있구나. 서울에서, 영덕에서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오는 마음이 그랬다. 그 이야기가 오래 마음에 남았다.

 

사람은 태어난 곳에서만 고향을 만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살아가면서 또 하나의 고향을 만날 수도 있다. 나도 그렇다. 처음 울진에 왔을 때는 바다가 좋았다. 산과 바다가 한곳에 있는 풍경도 좋았다. 금강송 숲의 깊은 향기도 좋았다. 죽변항을 드나드는 배와 수평선 너머로 올라오는 빛도 좋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좋아진 것은 풍경만이 아니었다.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다.

 

▲ <사진 설명> 필자의 집에서 바라본 죽변면 마을 풍경과 죽변항 ©

 

울진 사람들의 정은 전라도와 조금 달랐다. 전라도의 정(情)이 구수하고 삼삼하다면, 울진의 정은 조금 짭짜름한 맛이 있다. 처음부터 달고 진하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말수가 많지 않은 듯하고, 표현도 투박해 보인다. 그런데 오래 지내다 보면 그 맛이 깊어진다. 한 번 건넨 인사가 오래 남는다. 무심한 듯 챙겨주는 손길도 고맙다. 말보다 행동으로 마음을 보여주는 사람도 많다. 어쩌면 내가 울진을 좋아하게 된 것은 바다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바다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씩 알게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울진을 객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돌아보니 울진에서 보낸 시간이 어느새 내 삶의 한 부분이 되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바다가 있다. 길을 걷다 보면 산이 있다. 계절이 바뀌는 모습을 이곳에서 보고, 이웃의 안부를 묻는다. 하루의 일을 마치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다. 이제 울진은 내가 살아가는 곳을 넘어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그렇다고 전라도의 고향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더 또렷해진다. 어느 날 죽변 바다를 바라보다가 문득 어린 시절의 산길이 떠오른다. 바다 냄새를 맡다가도 오래전 고향집 부엌에서 피어오르던 저녁 연기가 생각난다. 참 먼 길을 왔다. 산골에서 태어난 아이가 동해 바닷가에서 살아가고 있다. 생각해 보면 이것도 인생이다.

 

태어난 곳에는 어린 시절의 시간이 머문다. 오래 살아온 곳에는 현재의 시간이 쌓인다. 하나는 떠나온 고향이고, 다른 하나는 살아가며 얻은 고향이다. 이번 추석에는 멀리 있는 고향에 가지 못하더라도 너무 쓸쓸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까운 곳에도 고향 같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함께 밥을 먹고, 차 한잔을 나누고, "형님, 아우!"하고 불러줄 사람이 있다면 그곳에도 고향의 온기가 있다.

 

고향은 어쩌면 지명이 아니라 사람인지도 모른다. 사람을 품어주는 곳이라면, 그곳은 언젠가 마음속의 지명이 된다.

 

▲ <사진 설명> 필자의 뒷동네 바닷가, 죽변면 후정해수욕장.    ©

 

오늘도 죽변 바다에 파도가 밀려온다. 나는 그 바다를 바라보다가 어린 시절의 산을 생각한다. 바다를 보지 못하고 자란 산골 아이가 이제는 바다를 바라보며 살아간다. 산에서 시작한 삶이 먼 길을 돌아 바다에 닿았다. 그 사이에 사람들이 있었다. 시간이 있었다. 내가 살아온 세월이 있었다.

 

그래서 내게는 두 곳의 고향이 있다. 하나는 나를 낳아준 전라도의 산골이고, 다른 하나는 남은 삶을 품어준 울진의 바다다. 아마 고향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떠나온 곳은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오래 살아온 곳은 어느새 마음속에 들어온다. 그렇게 사람은 살아가면서 고향을 하나씩 늘려가는지도 모른다.

 

- 어느 바닷가에서 -

 

▲ 전국안전신문 논설위원, 엄두호     ©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