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한민국 공무원, 이제 변하자

적법한 관행을 넘어 국민에게 본이 되는 공직으로

엄두호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26/10/04 [09:00]

<칼럼> 대한민국 공무원, 이제 변하자

적법한 관행을 넘어 국민에게 본이 되는 공직으로
엄두호 논설위원 | 입력 : 2026/10/04 [09:00]

Ⅰ. 자랑스러운 공공기관장

필자가 아는 한 공공기관장이 있다. 기관장에게는 관용차와 운전직 직원이 있다. 하지만 그는 출퇴근할 때 관용차를 이용하지 않는다. 자신의 차량을 직접 운전한다.

임직원들과 1박 2일 일정으로 연수를 떠났다. 숙박과 식사 비용은 기관 예산으로 집행됐다. 하루 일정을 마친 뒤 저녁 식사 자리가 마련됐다. 임직원들의 취향에 맞춰 라면부터 고기류까지 음식은 다양했다. 그런데 술은 없었다. 국민의 세금으로 마련된 연수 자리인 만큼 임직원들이 연수에서 술을 마시는 관행을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연수장 밖으로 나가 개인 돈으로 사 마시는 것은 자유라고 했다.

필자는 이 이야기를 들으며 국민의 세금을 쓰는 사람들의 품격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생각했다. 법에 정해진 의무를 지키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아니면 법에는 적혀 있지 않더라도 국민을 의식하며 한 번 더 자신을 돌아보는 태도가 필요한가.

공직사회가 국민에게 신뢰를 얻는 출발점은 어쩌면 이런 작은 선택에 있는지도 모른다.

Ⅱ. '적법하다'와 '떳떳하다'는 같은 말이 아니다

최근 국가기관의 한 기관장이 지난해 해외에서 열린 국제회의에 참석하면서 배우자의 여비로 1천만 원이 넘는 국가 예산을 사용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보도에 따르면 해당 기관의 출장에는 기관장 부부를 비롯해 여러 관계자가 참여했고, 전체 출장 경비 가운데 배우자의 여비로 1,031만3,000원이 집행됐다. 기관 측은 배우자 동행이 기존 국제회의 참석 관행에 따른 것이며, 주최 측의 승인과 예산 편성 절차도 거쳤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법과 절차에 문제가 없다는 설명은 중요하다. 공공기관의 예산 집행은 정해진 규정에 따라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직사회가 지켜야 할 기준이 법과 절차에만 머물러야 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특히 국민의 세금이 들어가는 일이라면 적법성에 더해 필요성과 타당성도 살펴야 한다. 오랫동안 이어진 관행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지출이 당연히 정당화되는 것도 아니다.

필자는 이번 일을 특정 기관장 개인의 잘잘못으로만 바라보고 싶지 않다. 오히려 공직사회가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온 관행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Ⅲ. 국민의 세금에는 더 엄격한 잣대가 필요하다

공무원은 국민이 낸 세금으로 급여를 받고 공적인 업무를 수행한다. 국가 예산 역시 공직자가 개인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돈이 아니라 국민이 맡긴 공공의 재원이다.

따라서 공직자의 예산 사용에는 일반적인 소비와 다른 기준이 필요하다. 특히 직위가 높을수록 책임은 커진다. 기관장이나 고위공직자의 선택은 개인의 행동에 그치지 않고 조직의 관행과 기준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 그에 걸맞은 책임과 절제를 요구하는 것이다.

국민은 공직자의 행위를 법조문으로만 판단하지 않는다. 상식과 형평성의 기준으로 바라본다. 그 돈이 꼭 필요한 곳에 쓰였는지, 다른 방법은 없었는지, 공직자가 스스로 절제할 여지는 없었는지를 함께 살핀다.

결국 공직자의 책임은 법을 지키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국민이 믿고 맡길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까지 공직의 책임이다.

Ⅳ. 관행보다 국민의 눈높이를 먼저 생각하자

그렇다면 공직사회의 관행을 어떻게 바꿔야 할까.

우선 국가 예산이 들어가는 공무출장부터 기준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공무원이 아닌 사람이 공식 출장에 동행하는 경우 국가 예산으로 여비를 지원하는 것이 정말 필요한지 따져봐야 한다.

물론 국가 간 외교나 국제회의의 공식 의전처럼 배우자 동행이 필요한 특별한 상황도 있을 수 있다. 모든 경우를 일률적으로 제한하자는 뜻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예외의 기준이다. 왜 필요한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지출이 공적인 목적에 부합하는지도 분명해야 한다. 국민이 알게 됐을 때 그 필요성과 타당성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예전부터 그렇게 해왔다'는 말만으로 관행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시대가 달라지면 공직사회의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

적법한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출발점이다. 그다음에는 필요한 지출인지, 적절한 지출인지,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Ⅴ. '대한민국 공직자는 이렇게 한다'

다른 나라에서도 국제회의나 공식 행사에 배우자가 동행하고 국가가 비용을 부담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다른 나라의 관행이 우리 공직사회의 기준이 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대한민국이 더 높은 기준을 세울 수 있다. 국가 예산을 사용할 때 법적으로 허용되는지만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눈으로 한 번 더 살피는 것이다.

'이 지출을 국민이 알게 된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공직자가 예산을 사용할 때 이 질문을 한 번쯤 떠올린다면 불필요한 지출과 낡은 관행은 자연스럽게 줄어들 수 있다.

공무원은 국가의 주인이 아니다. 국민이 맡긴 일을 국민을 위해 수행하는 사람이다. 직위가 높아질수록 이 원칙은 더욱 무거워진다.

대한민국 공직사회도 이제 한 단계 달라져야 한다. 법을 지키는 데서 멈추지 않고 절제와 책임을 더해야 한다. 과거의 관행을 따르기보다 지금의 국민 눈높이에 맞는 기준을 세워야 한다.

변화는 거창한 제도 개혁에서만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세금을 사용하는 작은 순간에 한 번 더 자신을 돌아보는 데서 시작된다.

한 걸음 더 절제하고, 국민의 눈으로 한 번 더 살피는 것. 그것이 국민의 봉사자라는 공직의 의미를 실천하는 길이다.

- 어느 바닷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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