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강압적 항의의 부작용, 정치인 소신 지킬 수 없는 사회

최은경 | 기사입력 2024/12/29 [10:06]

[기자수첩] 강압적 항의의 부작용, 정치인 소신 지킬 수 없는 사회

최은경 | 입력 : 2024/12/29 [10:06]



28일 진보당 부산시당과 민주노총 부산본부가 주도한 농성이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 내란 혐의라는 구호 아래,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에게 입장을 밝히라며 사무실 앞에서 벌어진 이번 사태는 정치와 시민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과연 이러한 강압적 항의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당한가, 이로 인해 정치인이 소신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은 얼마나 남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강압적 행위는 항의라는 선을 넘는 것

정치적 항의는 민주주의의 기본 요소다. 국민은 자신들의 의견을 정치인에게 전달하고, 이를 통해 정책이나 정치적 방향을 견제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항의의 선을 넘어 강요와 강압으로 보인다. 박수영 의원에게 “내란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며 물리적 대치와 집무실 점거 시도까지 이어지면서, 이는 사실상 정치적 협박에 가까웠다.

 

정치인이 무슨 말을 해야 하고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하는지 강요하는 강압적 농성은 이 사회가 민주적 논의의 원칙을 잃어버리게 하지 않는가. 의견이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특정 정치인을 강압하는 행위로 그 자체가 민주주의 기본 가치인 다양성과 관용을 훼손한다.

 

소신 없는 정치로 대중영합을 추구해야 하는가

정치인은 국민을 대변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소신을 가지고 정책을 제안하고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강압적 분위기가 만연하면 어떤 정치인이 자신의 소신을 솔직하게 펼칠 수 있겠는가?

 

오늘은 내란 혐의에 대한 입장을 강요받지만, 내일은 또 다른 문제에서 침묵이나 동조의 강요받을 것 아닌가. 정치인들이 여론의 눈치를 보며 대중영합적인 발언만을 하게 된다면, 정치의 질적 하락으로 이어지며, 그 손해는 국민들이 받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 정치가 이미 겪고 있는 대중영합주의(populism)의 늪은 이런 사건들을 통해 더 깊어진다. 정치적 다양성과 토론은 사라지고, 누가 더 큰 목소리로 상대를 억누르는가의 문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항의의 방식, 정당성을 잃다

시민들의 항의는 정당하다.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에 문제를 제기하고, 이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방식이 문제라는 것이다. 사무실을 점거하거나 물리적 충돌을 일으키고, 특정 정치인을 겨냥해 강제로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하는 것은 확실히 정당한 비판의 범주를 벗어난다.

 

이런 방식의 항의는 오히려 문제의 본질을 흐리게 한다. 박수영 의원이 내란 혐의를 옹호한 것도 아니고, 헌법에 명시된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모인 사람들은 설명을 가로막고 침묵을 '내란 공범'이라 단정지으며 '내란 공범 나와라'를 연신 외쳤다.

 

결국 논의할 기회는 강압적인 항의로 인해 사라졌버린 것이다. 본인들이 요구하는대로 응하지 않으면 듣지도 않고 용납도 안하겠다는 태도는 다양성을 묵살하고 서로 간의 대립과 갈등뿐이다.

 

80년대 민주주의를 향한 뜨거운 함성들은 다양성의 싹을 자르는 지금의 이런 농성과는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민주주의, 다양성과 대화가 핵심이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의견이 공존하는 체제다. 누군가 다른 입장을 가졌다면, 그것 역시 민주적 토론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 입장이 잘못됐다면, 논리와 설득을 통해 반박해야지, 강압적으로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부정하는 행위다.

 

항의의 자유는 보장돼야 하지만, 그 자유는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번 사건은 정치적 항의의 선을 넘어,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다양성과 소통이 얼마나 쉽게 훼손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이다.

 

정치와 시민의 균형

정치인은 소신을 가지고 국민을 설득해야 하고, 시민은 건설적인 방식으로 정치인을 견제해야 한다. 강압적 항의는 정치적 논의의 장을 파괴하고, 결국 모두가 손해를 보는 결과를 낳는다. 이번 사건은 정치와 시민 사회가 서로를 대하는 방식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우리는 더 성숙한 민주주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답은 대화와 관용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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