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산 지하 갱도에 매몰된 2명의 광부가 221시간 만에 구조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윤석열 대통령도 기적 같은 일이 일어 났다며 감사하고 감사하다고 감격을 전했다. 10월 26일 봉화군 산재면 소재 아연 채굴 광산에서 900톤의 토사가 무너지면서 작업 조장 및 보조 작업자가 지하 190 m에서 작업 도중에 매몰됐다.
사고 당시 7명이 작업을 하고 있었다. 2명은 미리 이상 징후를 느끼고 자력으로 빠져 나왔으며 3명은 광산 업체가 자체 구조를 했다. 나머지 2명은 구조되지 못하고 사고후 14시간이 지난 후에 119에 신고했다. 사고를 당한 2명은 작업 반장 62세 박모씨와 보조 작업자 56세 박모씨다. 구출 작업이 진행된 9일 동안은 현장을 지키고 있는 가족들과 언론을 통해 보는 국민들의 간장이 타는 기간이였다.
10월 27일 소방당국은 인력 130명과 장비 29대를 동원해 구조 작업을 시작했다. 구조 지점에 도달할려면 4일 정도는 작업을 해야 한다는 예상을 했다. 28일에는 한덕수 국무총리가 봉화소방서에 전화를 걸어 현장 구조상황을 보고받고 신속한 구조를 주문했다.
29일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최대의 인력과 장비를 투입해 구조에 최선을 다해 달라는 당부를 했다. 이 날 지름 76mm 짜리 첫번째 천공기 시추 작업이 시작됐다. 해당 구간에 대형 암석이 많고 강도가 높아 패쇄 시간이 오래 걸렸다.
30일 지름 98mm짜리 두번째 시추 작업이 시도됐다. 31일 첫번째 천공기를 이용한 작업으로 지하 185m까지 파내려 갔으나 고립된 노동자에게 접근하지 못했다.
11월 1일 두번째 천공기 시추 작업으로도 사고 지점에 접근할 수 없었다. 그 이유가 구조를 위한 측량에 이용한 도면이 20년 된 문서로 실제 측량과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 였다. 이철우 도지사는 매몰자 구조를 위한 총력을 기울리면서 타 지역 전문가들의 협력을 구하기도 했다. 다시 새로운 천공기 3대를 동원해 다시 구멍 뚫기를 시도했다. 빠른 구출을 고대하던 가족들의 항의의 소리가 높아졌다.
2일 사고 대피 예상 지점의 25m 까지 접근했다. 그러나 생사여부는 확인할 수 없었다. 3일 시추기로 작업자들이 매몰된 것으로 추정되는 170m까지 구멍을 뚫는데 성공했다. 그 구멍으로 내시경을 집어 넣어 확인했으나 생사 확인은 할 수 없었다.
4일 그 구멍으로 가족들이 무사 생환을 기도하면서 음식물과 편지를 넣었다. 이 날 오후 11시 구조대가 암석층을 뜷고 노동자가 작업하던 위치로 진입하는데 성공했다. 갱도에 매몰됐던 광부 2명은 구조대원을 붙잡고 직접 걸어서 나왔다.
2명이 매몰되어 있었던 곳은 20명 정도가 들어 갈 수 있는 넓은 공간이었다. 작업 반장은 20년의 경력자였으나 작업보조자는 광산에 온지 4일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작업 반장은 "여기서 우리가 살려면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정신 똑바로 차려라" 고 보조자를 다독거렸다고 한다.
제2의 수직 갱도를 통하는 탈출로를 찾아 다녔으나 모두 막혀 있었다. 2명의 광부는 주변의 비닐을 주워서 방풍막이를 만들고 젖은 나무에 산소용접기로 모닥불을 피워 추위를 버티며 구조를 기다렸다. 다행히 산소는 환기가 되어 충분했으며 고립 당시에 가지고 있던 10L의 물과 커피믹스를 물에 타서 한모금씩 나누어 마시고 밥처럼 먹었다.
커피믹스가 떨어졌을 때는 벽에서 떨어지는 지하수를 먹으며 버텼다. 매몰되어 있을 때는 발파하는 소리가 5차례 들렸으며 밖에서 자신들을 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들의 생존을 알리기 위해 화약을 모아 2번 터뜨리기도 했다.
지하에 갇힌 두 사람은 체온을 보존하기 위해 서로 몸을 맞 대고 지내면서 희망을 잃지 않고 서로를 위로하며 기다렸다. 갱도 안에서는 시간 감각을 잃고 있었기 때문에 체감 시간은 실제보다 짧았다. 구제된 두 광부는 안동병원으로 이송되어 2인 병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정맥 주사와 수액 치료를 받고 있으나 건강 상태는 양호하다.
온 국민과 정부와 언론이 이태원 참사에 얼이 빠진 상태로 봉화 광산에 대한 관심이 떨어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봉화 광산에 매몰됐던 2명의 국민이 9일만에 구출되어 걸어나오는 기적을 보고 온 국민이 하나님께 감사를 올렸다.
이태원 골목에서 어처구니 없는 156명의 죽음을 슬퍼하던 국민에게 지하 185m의 갱도에 묻혔던 노동자가 살아나오는 기적의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우리는 이태원에서 왜 그렿게 많은 청소년들이 죽었는지 알 수가 없다. 봉화 광산에서 2명의 생명이 살아나온 이유도 알 수 없다.
이태원 참사 애도 기간이 끝나면서 이 사고의 책임을 놓고 전쟁같은 논란이 시작되고 있다. 정치와 언론, 정부와 시민, 노인과 청년이 이 참사와 이 기적 앞에 서있는 자신을 다시 돌아 보아야 겠다. 나는 누구이며, 나는 무엇을 잘못 했으며,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 이동한 헌정회(憲政會) 편집주간,
- 현, 전국안전신문 논설위원,
- ♦이동한 DM(dream making)리더십포럼이사장, 전 세계일보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