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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석정》술잔을 돌리다 죽었다
기사입력: 2022/10/22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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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석정(鮑石亭)은 신라시대 왕과 신하가 술을 마시고 시를 읊으며 즐기던 정자다. 포석정은 돌에 홈을 파서 물을 흐르게 하고 그 흐르는 물에 잔을 띄워놓고 술잔을 주고 받으며 연회를 베풀던 곳이다. 돌의 홈 모양이 구불구불한 전복 껍질과 같다고 하여 포석정이라 하였다.

 

 

 

통일신라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며 현재 건물은 없어지고 석조 구조물만 남아 있다. 화강석으로 만든  물길의 너비는 30cm, 깊이는 20cm, 높낮이의 차이는 5.9cm이며, 타원형 물길의 길이는 22m에 이른다. 술잔의 크기에 따라 흐르는 물의 속도가 다르고 술잔 속에 담은 술의 양에 따라 잔이 흐르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다고 한다. 포석정이 있는 곳은 경주 남산 서쪽의 계곡에 있으며 신라 시대는 별궁이 있었으며 현재 건물은 모두 없어지고 석재 구조만 남아 있다.

 

 

 

신라시대 궁중의 연회 장소로 추정했으나 1998년에 많은 유물과 함께 제사에 사용하는 그릇들이 출토되면서 신라 왕실의 별궁이자 신라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의식을 행하던 곳으로도 알려졌다. 1963년 우리나라 사적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중국의 명필 왕희지가 쓴 난중일기에 보면 친구들과 함께 흐르는 물에 몸을 씻고 제사를 올리고 난 뒤에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을 베풀었다는 기록이 있다. 

 

 

 

선비들이 결제사를 올리고 난 뒤에 개울 위에 술잔을 띄워  술잔이 자기 앞에 오는 동안 시를 지어 읊어야 하며 그렇게 하지 못하면 벌칙으로 3잔의 술을 마시게 한 잔치를 행했다. 이같은 왕희지의 유상곡수를 본을 따서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와 일본 등지에서 유상곡수연의 유배거를 만들었다고 한다. 원래는 큰 돌 거북을 만들어 놓고 저수지물을 끌어다가 그 거북의 입으로 물이 나와서 돌 홈으로 흘러가게 했다고 한다. 

 

 

 

삼국유사 처용랑 망해사조의 기록에 의하면 제 49대 헌강왕이  포석정에 행차하여 연회를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남산 신이 임금 앞에 나와 춤을 추었는 데 신하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임금은 손수 일어서서 남산 신과 춤을 추고 난 후에 그 춤 추는 모습을 흉내내 보였다. 그 후부터 그 춤이 널리 행해 졌다고 한다. 그 남산 신의 이름을 따서 어무산신 또는 어무상심, 상심무라고 하였으며 그 후에 교려 때까지 전해져 유행했다고 한다. 

 

 

 

927년 신라 경애왕이 후백제 견훤 군대의 습격을 받아 이 포석정에서 최후를 맞았다. 백제군이 코앞에 처들어 왔는데도 모르고 화려하게 연회를 베풀며 향락을 즐기던 경애왕은 백제 견훤으로부터 자결을 강요당했다고 한다. 포석정이 연회장이 아니라  제사를 지내는 장소로 봐야 한다는 해석도 있다. 술잔을 물위에 띄우는 것도 제사의식의 하나라는 견해도 있다. 경애왕이 몰락해 가는 신라를 구하기 위해 제사를 지내다 화를 당했다는 주장도 있다. 후백제의 견훤은 경애왕을 죽인 후에 꼭두각시  경순왕을 세웠다. 

 

 

 

견훤이 바로 신라를 지배하지 않았던 것은 천년의 역사를 지닌 신라와 고려가 힘을 합쳐 백제를 공격해 올가 두려워 했기 때문이였다.   포석정은 왕과 신하가 하늘에 정성을 다해 제사를 올린 성스러운 곳이 였다. 왕족이 궁여들과 화려한 연회를 베푼 환락의 장소였다. 또한 적군이 공격해 오는 것도 모르고 환락을 즐기다가 왕이 목숨을 잃은 곳이다. 신라 멸망의 비극을 맞고 죽어 간 왕의 한이 어려 있는 곳이다. 포석정 돌 홈에 흐르는 물위에 떠서 돌던 술잔이 마지막 멈추고 난 뒤에 천년이란 세월이 흘러  오늘까지 왔다. 술잔이 떠서 흐르던 포석정의 흔적은 남아 있는데 그 날의 임금과 신하, 백성들은 모두 흙이되어 버렸다.

 

 

 

그러나 포석정의 술잔이 지니고 있는 경건과 환락, 비애의 의미는 지금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지금 삶을 위해 주고받는 나의 술잔 돌리기가 제사를 지내는 거동인지, 쾌락을 즐기려는 짓인지, 후대에 남길 한을 만드는 놀이인지 돌아 볼 수 있다. 포석정의 천년 과거로 돌아 가볼 수 있다면 경애왕을 만나 구국을 위한 제사를 지낸 것인지, 적군이 닥친 줄도 모르고 환락에 빠진 것인지 아니면 닥쳐온 망국의 상황을 비관하고 포석정 술잔으로 왕의 스트레스를 풀려고 한 것인지 물어 보고 싶다. 그렇지 인생은 술잔돌리가 아니던가. 그 답을 듣지 못해도 오늘 나를 덮친 적군 같은 스트레스를 저 포석정 술잔에 띄워 날려 보내려 한다.​​

 

- 이동한 헌정회(憲政會) 편집주간,

- 현, 전국안전신문 논설위원,

- ♦이동한 DM(dream making)리더십포럼이사장, 전 세계일보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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